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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 냉동피킹 풀타임 일용직 신규 알바 후기, 꿀팁 모음 (세줄요약 있음)

수지🌷 2025. 2. 28. 15:22

TL;DR (꿀팁 세줄 요약)

1. 방한복 잘 입고 카드키랑 완장 잘 챙기자. 

2. 챙겨가면 좋을 것: 커터칼, 마스크, (정신과를 다니는 경우) 필요시 약 / 불편한 것: 안경

3. 영등포역 근처 셔틀은 역 건너편 맥도날드에서 타고 내린다. 

 


 

약 2주 전 나는 지뢰계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뢰계 패션이란? 대충 리본과 레이스가 엄청나게 붙은 귀여운 소녀 의상이라고 보면 된다. 이 패션의 문제?는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패션의 특성상 맨투맨이나 청바지 같은 일상복과는 매치가 힘들어서 한번 외출을 하려면 헤어 악세사리부터 신발까지 모든 아이템을 새로 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벌써 중고로 셋업 2벌, 원피스 1벌, 코트 1벌을 샀다. 가방과 구두는 일단 있는 걸로 때웠지만, 사야 한다는 욕심이 커지고 있다. 리본 악세사리는 직접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히겠다는 판단으로 동대문에서 부자재를 약 3만원 가량 질렀고, 평소에 화장도 하지 않아서 풀메이크업을 위한 화장품으로 약 6만원 가량을 추가로 썼다. 원래 내 패션은 기껏 해봤자 스파 브랜드, 게다가 새로 사는 돈도 아까워서 당근에서 한 5천원 하는 옷을 주워 입는 정도였다. 그래서 돈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패션에 갑자기 거금을 쓰다 보니 생활비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알바나 과외도 하지 않아서 보통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한 달을 산다. (불속성 효도를 실천하는 편이다) 이미 쓴 돈을 메꾸기 위해서는 뭔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과외는 내가 경쟁력이 없는지 잘 안 잡히고, 편의점이나 피시방 알바도 지원할 때마다 낙방이었다. 자연스럽게 유연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용직 노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 친구가 추천해준 마켓컬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알바몬에 마켓컬리를 검색해보니 게시글이 많았다. 나는 풀타임 냉동 피킹으로 지원했다. 돈이 급해서 최대한 높은 확률로 출확 (출근 확정이라는 뜻)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켓컬리에 지원하기 전 쿠펀치로 쿠팡 입고에 지원했는데, 비교적 쉬워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원할 때마다 반려였다. 그때 친구가 마켓컬리를 추천해 줬고, 이번에는 꼭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냉동으로, 그나마 몇천원 더 주는 피킹으로 신청했다.

꽤나 저녁에 신청했어서 신청 폼을 낸 지 30분 뒤 연락이 왔다. 인원이 다 차서 출근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할 것도 없으니까 지뢰계 옷을 입고 외출이나 해볼까? 생각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지뢰계 옷을 입고 풀메이크업을 한 채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놀러갔다. 가챠샵을 구경하고 있던 순간, 나한테 결원이 생겼으니 출근 의사 있냐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나는 엄청나게 고민했다. 아씨... 돈이 급하긴 한데? 이 차림에? 이걸 어떡해? 가야 해, 말아야 해? 그래도 돈을 버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 출근 폼을 작성했다. 일단 출근을 해야 다음에 출근을 하든 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나의 패션. 이러고 풀메이크업하고 컬리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마침 주변에 셔틀을 탈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영등포역 3번 출구 앞 엔제리너스) 남은 시간은 30분 가량. 이 안에 일하러 가기 적당한 옷을 산 다음에 셔틀을 타야 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폴햄 반값 행사를 하고 있었고, 영등포역 바로 밑에는 지하상가가 있었다. 폴햄 매대에서 2만원짜리 바지를 사고 지하상가에서 만원짜리 맨투맨을 샀다. 좀 큰 지출인 것 같...지만 어차피 옷은 나중에도 입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옷을 사고 나니 남은 시간은 5분. 이 시간 내에 셔틀이 서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분명 엔제리너스 앞이라고 했는데, 카카오맵 상으로는 영등포역 상가 안에만 엔제리너스가 있지 주변에는 엔제리너스가 없었다. 그렇게 셔틀을 어디서 타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허망하게 셔틀 시간이 지나 버려 주변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날따라 또 후불교통카드를 안 가져왔다. 모바일 티머니 앱으로 5천원을 결제한 뒤 급하게 버스를 탔다. 또 추가 지출이 생겼다...

 

나는 60번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정류장이 근처에 있어서 내리고 난 후 대충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면 정문에 도착한다. 정문에 도착하고 나면 출확 문자에 있는 링크 내 안내대로 따라가면 된다. 신발장에 비치된 안전화를 신고 카드키와 완장을 받는다. 이거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카드키가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이동하는 데에 제약이 있다. 완장을 잃어버리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수당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듣긴 했다. 그 다음 컬리웍스 앱으로 전자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컬리로 앱으로 출근을 체크한다. 신규 사원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약 30분 정도를 동영상 시청으로 때울 수 있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동한다.

 

대충 이런 것들을 받는다. 안전보건교육 이수증과 완장.

 

현장에 도착하면 고참처럼 보이는 분께서 한 명 붙어서 일을 알려주신다. 피킹 업무는 나름 간단하다. 방한복을 입은 다음, PDA라는 스마트폰처럼 생긴 기기를 받고, 카트를 받는다. 카트에 토트라고 불리는 바구니를 여러 개 챙긴 뒤 PDA에서 지시하는 냉동챔버에 들어가서 PDA에 표시되는 상품을 찍은 후 카트에 넣으면 된다. 

생각보다 냉동창고는 춥지 않았다. 현장에서 방한복과 장갑, 핫팩을 지원하기 떄문에, 생각보다 버틸 만하다. 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코털이 얼어있는 게 느껴져서 숨쉬는 게 힘들었다. 어떤 분께서는 눈썹이랑 속눈썹도 얼어 있더라...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아마 나도 그랬을 것 같다. 냉동 창고의 공기 질도 좋지 않아서 마스크를 챙겨가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챙길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은 마스크를 챙겨가면 좋을 것 같다. 또, 냉동 챔버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중에 안경에 김이 매우 잘 서리니 안경을 안 써도 문제 없는 수준의 시력이라면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눈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피킹 작업을 매우 빠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60개의 물건을 피킹하는 데 15분의 시간을 잡는데, 처음 하는 거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여러 물건이 한 구역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본적으로 속도 조금 더 올려서 작업해주세요~ 라는 독촉 방송을 일하는 시간 거의 내내 하고, 피킹이 조금만 늦어지기라도 하면 (PDA 번호 또는 이름) 님 하던 일 빠르게 마무리하실게요~ 라고 방송한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계약직 분들이 직접 오셔서 도와 (운이 안 좋은 경우는 꼽을) 주신다. 나 같은 경우는 원체 손이 느린 편이라서 한 4번 정도 계약직분들께서 오셨다.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여기서도 도태되는 그야말로 부적격 노동자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물류센터에서 1인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자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다행히 참았다. 냉동 챔버에서 울면 그야말로 눈물도 얼어버릴 것 같기 때문에, 컬리 냉동에 가게 될 여러분들도 울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물건을 찍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물건이 들어 있는 박스를 까고 버려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이때 맨손으로 박스를 까면 익숙하지 않을 경우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중간에 몇몇 분들이 맨손으로 박스 까는 팁을 알려주셔서 속도가 붙긴 하는데, 그 방법으로 해도 박스 까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아 커터칼을 챙겨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꼽을 먹고 싶지 않으면 커터칼을 미리 챙겨가자.

 

길을 못 찾겠다거나, PDA 조작법이 헷갈린다거나, 어느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등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주변에 빨간 조끼를 입고 계신 분들한테 가서 물어보는 게 빠르다. 처음에 업무를 가르쳐주셨던 분께서는 굉장히 친절하셨는데 몇몇 분은 꼽을 주는 것처럼 느꼈다. (다만 나도 어디 가서 꼽을 받으면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기에 적절히 대응했다 ^^) 그래도 친절하신 분이 더 많으셨다. 냉동이 분위기가 좋다는 말은 다른 블로그 글을 보고 얼핏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 이상 되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워낙 유리멘탈이라서... )

 

그렇게 약 2시간 (신규 사원의 경우는 1시간 반) 정도 뺑이를 치고 나면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시간이다. 방한복을 벗고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곳으로 적당히 따라가면 식당이 나온다. 밥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내가 갔던 날에는 미역우동이 나왔다. 미역우동과 돈까스? 같은 정체불명의 고기는 정해진 양을 주시고, 나머지 밥이나 샐러드는 자율배식이다. 나는 원래 락토오보 언저리를 지향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고기반찬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식판에 너무나도 빨리 올려 주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왔다. 원래 샐러드를 참 좋아하는데 이날은 잘 넘어가지 않더라.

 

마켓컬리의 저녁. 미역우동, 밥, 샐러드, 맛살반찬.

 

밥을 먹으면서 노동 소외, 신자유주의, 프레카리아트 등 책에서만 접했던 언어들이 나에게 직접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차라리 물류센터와 레토르트 초가공식품이 없던 시대가 더 살기 좋았던 게 아닐까?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일에 치여 장을 볼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상품을 주문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착취적인 노동에 기대어 착취당할 시간을 번다. 거대한 착취의 굴레의 한 면을 본 것 같다. 나는 기업의 '효율적' 알고리즘에 의지한 채 복잡한 기계의 한 부분이 되는 불완전한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을 하면서 먹고살 바에는 차라리 인문대 대학원에 가서 아사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급기야 나는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자연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정신병 스위치가 켜졌다. 약 생각이 간절해졌다. 필요시 약을 챙겨왔어야 했다. 식당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해야 했으므로, 1시간 내에 밥을 먹고 일어나야만 했다. 결국에는 돈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서 보는 야경은 정말 예쁘더라. 풍경을 보며 잠시 위로를 얻었다. 

 

그렇게 업무에 복귀하고 난 후 얼마 안 있다가 휴식 시간을 준다. 대체 휴식 시간을 왜 이렇게 저녁 시간이랑 가깝게 배치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단 시간을 주니 감사히 쉰다. 10분 정도 폰을 하다가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간다. 슬슬 일에 익숙해져서 속도가 붙는다... 고 나는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방송이 흘러나온다. 약 여덟 번째로 컨베이어에 토트를 싣고 나면 약 한 달 정도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슬슬 지겹다. 빠져나가고 싶어진다. 물 생각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없고, 물을 어디서 마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참았다. 토트에 삼겹살 또는 갈비를 40팩 정도 담고 나면 제발 인간들이 고기를 좀 그만 쳐먹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요즘 기후위기 문제도 심각한데, 고기를 왜 이렇게 많이 소비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에게 삼겹살을 뺏어야 한다. 원래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고기 40팩을 담아보니 고기에 대한 정이 완전히 떨어졌다. 쳐다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초췌한 나의 모습...

 

한 9시 반 정도 되면 미칠 듯이 시간이 안 간다. 체감상 약간 15분 인터벌을 하는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배치의 파도 속에서 온 힘을 다해 15분 안에 맞춰서 끝내려고 노력해 보지만 역시 힘들다. 또 속도 올려서 해달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럴 거면 사람을 더 뽑거나 해라.. 는 말을 작게 내뱉은 채 피킹을 한다. 그렇게 한 여덟 사이클 정도를 또 돌다 보면 12시에 피킹 업무가 끝난다. 

 

업무가 끝난다고 바로 집에 보내줄 리는 없고, 포장이나 다른 업무를 시키기 위해 사원들에게 줄을 서라고 한다. 맨 뒤에 줄을 선 사람 몇 명은 청소로 불려갔다. 바로 내 뒤의 사람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위치에 줄을 선 사람들이 안도하는 것을 보아하니 청소는 꽤 힘든 작업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포장(패킹) 하는 쪽으로 불려갔다. 포장을 해본 적 있는 사람들은 포장을 하고, 포장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포장하는 사람들 보조로 박스에 송장 스티커를 붙이거나 포장할 때 들어가는 드라이아이스 박스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맡는 것 같다. 포장해본 적 없다고 하니, 처음에는 송장을 붙이는 일을 시켰다. 그러다가 관리자처럼 보이는 분께서 포장을 한번 해보라고 시켜서 한 3분 정도 포장을 하다가, 또 다른 관리자가 소리를 빽 지르면서 (아마 내 손이 너무 느려서 그랬던 것 같다) 쓰레기 처리하는 쪽으로 차출당했다. 포장 과정에서 나오는 박스나 비닐 쓰레기를 거대한 카트 같은 곳에 모아서 쓰레기를 모으는 트럭에 던지는 작업이었다. 박스가 정말 쉬지 않고 쌓이더라. 그래도 어느 정도 천천히 걸을 수 있기에 이 일이 가장 편했다. 박스를 트럭에 던질 때는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일을 할 때 매우 친절한 분을 만나서 멘탈도 그나마 회복되었다. 감사합니다...

 

일은 새벽 12시 50분쯤에 끝나고, 한 10분 전부터 청소를 한다. 이쯤 되면 슬슬 분위기가 풀어진다. 퇴근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다들 폰을 켜고 다시 휴게실로 가서 짐을 챙긴다. 뛰어가는 사람도 많던데, 나는 뛸 기력까지는 없어서 그냥 사람들을 따라서 걸어갔다. 사물함에서 지뢰계 옷이 가득 든 핸드백과 부직포 코트를 챙기고 카드키와 완장을 반납했다. 컬리로 앱에서 퇴근 버튼 누르는 것도 잊지 말도록 하자. 

 

다행히 퇴근 셔틀은 탈 수 있었다. 밤에는 대중교통이 없으니 퇴근 셔틀까지 놓쳤으면 김포에서 영등포까지 꼼짝없이 구두를 신고 걸어가야 할 판이었는데, 다행히 휴게실 문 쪽에 셔틀 지도가 있었다. 그거 보고 눈치껏 사람들 따라가서 잘 타면 된다. 너무 느리게 가면 자리가 부족해서 서서 가야 할 수도 있다. 퇴근 셔틀은 출근 셔틀의 반대로 간다. 영등포역 셔틀은 >>건너편 맥도날드<< 앞에서 내린다. 아마 출근 셔틀을 탈 때도 그쪽에서 탈 것 같다. 엔제리너스의 위치 때문에 헷갈렸던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통금이 있어서 새벽 5시까지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근처 24시간 카페인 카페카운티에 갔다. 물이 너무 간절해서 샷 뺀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물)를 시켰다. 사장님께서 처음에는 엥? 하시다가 이내 알았다고 하셨다. 자리에 앉아서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화장은 다 무너져서 코 근처가 허옇고, 입술 각질도 엄청났다. 셔틀 타기 전에 얼굴을 좀 확인해볼걸.. 하는 생각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잠이 간절했지만 어쨌든 카페에서 자면 민폐이므로 원래 고고하게 독서하려고 가져왔던 책을 거지꼴 상태에서 읽는다. 옆에서 보면 좀 웃겼을 것 같다... 

 

첫 노동소득.

 

돈은 저녁 6시쯤 들어온다. 처음으로 일해서 번 내역을 보니 뭔가 애틋함이 생긴다. 기억이 미화되는 것 같은 기분도...(?) 그나마 냉동+피킹이었기에 9만 6천원 가량을 받았는데, 다른 공정은 8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굴려 놓고 거의 최저시급이라니 좀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돈이 들어왔으니 일단은 조았쓰. 급한 일은 막았다. 앞으로는 돈을 잘 관리해야지.. 일어나 보니 온몸이 쑤시더라. 평소에 운동을 잘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냉동 피킹도 힘들었나 보다. 원래 허약한 사람들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뭐든 자기 몸이 우선이다. 

 

이번 마켓컬리 노동은 나의 첫 일용직 노동이자 첫 임금노동이다. 개인적으로 썩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노동이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거대한 알고리즘 체계에 종속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하면서 소외와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시급이 짜지만, 그럼에도 다음날 바로 돈이 들어오는 노동이 잘 없기 때문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다. 당장 내 친구들만 해도 돈이 급해서 쿠팡 알바를 많이 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하루 세 끼를 주는 기숙사에 살고 있고 매달 용돈을 받아 남부러울 것 없는 정도로 살고 있지만,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친구들이 많다. 알바도 구하기 어려운 시대이므로 많은 대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일도 운이 좋아 출확을 받아야 꾸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마냥 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방송으로 계속 더 속도 내라고 쉼 없이 채찍질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정말 최대한 열심히 했는데도 계속 방송에서 이름을 불렸다. 마켓컬리는 정말 사람을 갈아가면서 이윤을 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돈 벌어먹고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충격받았던 것 중 하나는 물류센터 내에서 쓰레기가 정말 미친 듯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마켓컬리에서는 '지속 가능한 유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환경에 신경을 쓰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포장에 재활용 스티로폼 박스와 종이 재질 파우치를 사용하는데, 그뿐이었다. 여전히 물류센터에서는 엄청난 양의 박스와 비닐 쓰레기가 쉼 없이 나온다. 산처럼 쌓인 박스와 비닐 쓰레기를 보고 아, 이런 걸 위장환경주의라고 하는 거구나 느꼈다. 이렇게 환경과 인간을 착취하면서까지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 문명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나는 진짜 모르겠다... 앞으로 쿠팡과 마켓컬리에는 절대 회원가입도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온 마음 다해 연대하리라. 

 

정문에서 본 현수막. 애도하고 연대합니다.